DC의 대표 히어로, 슈퍼맨 영화 맨 오브 스틸(2013)을 신과 인간의 딜레마, 탄생·정체성·파괴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깊게 해석한 영화 리뷰, 상세히 파헤칩니다.

영화 맨 오브 스틸 연출 및 출연진 (Man of Steel, 2013)
감독
- 잭 스나이더 (Zack Snyder)
300, 왓치맨, 저스티스 리그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본 작품을 통해 DC 유니버스의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출발시켰다.
맨 오브 스틸 출연진
- 헨리 카빌 (Henry Cavill) – 클락 켄트 / 슈퍼맨
크립톤행성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성장한 인류의 수호자 - 에이미 아담스 (Amy Adams) – 로이스 레인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이자 클락 켄트의 연인 - 마이클 섀넌 (Michael Shannon) – 조드 장군
크립톤의 군사 지도자이자 슈퍼맨의 최대 적 - 러셀 크로우 (Russell Crowe) – 조엘
슈퍼맨의 생부이자 크립톤 최고의 과학자 - 케빈 코스트너 (Kevin Costner) – 조나단 켄트
클락 켄트를 인간으로 키운 양아버지 - 다이앤 레인 (Diane Lane) – 마사 켄트
슈퍼맨의 양어머니로 따뜻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인물
조연 및 크립톤 인물
- 안제 트라우에 (Antje Traue) – 파오라
조드 장군의 부관이자 강력한 전사 - 크리스토퍼 멜로니 (Christopher Meloni) – 하디 대령
지구 방위군의 핵심 인물 - 로렌스 피시번 (Laurence Fishburne) – 페리 화이트
데일리 플래닛 편집장
1. 영화 슈퍼맨이 아니라 ‘맨 오브 스틸’이라고 부른 이유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은 제목부터 선언적입니다. 굳이 모두가 아는 이름인 “슈퍼맨”을 쓰지 않고, 맨 오브 스틸 뜻인 차갑고 단단한 “강철의 사나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희망의 히어로” 슈퍼맨이 아니라, “신에 가까운 존재가 인간 세상에서 어떤 윤리적 딜레마를 겪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핵심은 “초능력 자랑”이 아닙니다. 비행, 레이저, 괴력은 말 그대로 부수 효과에 가깝습니다. 진짜 중심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이 자리합니다.
- 탄생 – 크립톤 vs 지구, 자연 출산 vs 인공 배양, 한 존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정체성 – 나는 크립톤인인가, 인간인가, 혹은 둘 다이자 둘 다 아닌가
- 파괴의 윤리 –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존재가, 폭력과 파괴를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신과 인간의 딜레마라는 시각에서 맨 오브 스틸의 탄생·정체성·파괴의 윤리를 차례대로 짚어 보고자 합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니까 그냥 때려부수고 이기는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하며 보셨다면, 한 번쯤 다시 떠올려 볼 만한 지점들이 은근히 많이 숨어 있는 작품입니다.
2. 맨 오브 스틸 슈퍼맨의 별 크립톤의 몰락 – 신들의 세계도 이미 병들어 있었다
2-1. 자연 출산이 ‘범죄’가 된 행성
영화의 시작은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크립톤 행성의 출산 장면입니다. 조-엘과 라라는 한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그런데 이 출산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이 아이가 수 세대 만에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태어난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크립톤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를 “자연스럽게 태어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과 인공 배양을 통해 “생산”하는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각 계급과 직업에 맞춰 유전자 코드가 설계되고, 군인·과학자·정치가가 “프로그램된 존재”로 태어납니다.
즉, 크립톤은 처음부터 “자유”가 아니라 “설계”를 선택한 문명입니다. 이 세계에서 개인의 삶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이미 정해진 ‘기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연 출산”은 단순한 산부인과 이슈가 아니라,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급진적인 정치 행위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2-2. 조-엘 vs 조드 – 같은 위기의식, 다른 해법
조-엘(칼의 아버지)과 조드 장군은 크립톤의 몰락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인물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이대로 가면 우리 행성은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선택에서 길이 완전히 갈라집니다.
- 조-엘은 “새로운 시작”을 꿈꿉니다. 유전자 설계를 벗어나,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 조드는 “순수한 크립톤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기존 질서를 전복하고, 필요한 자원과 혈통만 추려 종족의 보존에 집착합니다.
둘은 위기에 반응하는 방식이 정반대입니다.
조-엘은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진화해 왔으니, 이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보고, 조드는 “우리는 위대했으니, 그 위대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괜찮다”고 믿습니다. 위기의 근원을 반성하느냐, 아니면 외부와 내부의 적을 탓하며 ‘순수성’을 좇느냐. 현대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보게 되는, 두 가지 정치적 반응이 여기서 미리 펼쳐집니다.
2-3. 코덱스 – 한 종족의 모든 가능성을 한 아이에게 넣다
조-엘은 크립톤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코덱스)를 훔쳐,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 칼-엘의 몸에 주입합니다. 이로써 칼은 단순한 아기가 아니라, 크립톤 종족 전체의 가능성과 기억이 담긴 ‘컨테이너’가 됩니다.
이 설정은 상징적으로 굉장히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칼-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과 “민족 전체의 운명”을 동시에 짊어진 존재가 됩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 무엇을 선택하든, 그의 안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행성의 유산”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맨 오브 스틸의 출발점은 단지 “초능력 외계인의 아기 시절”이 아니라, “멸망한 문명의 죄와 가능성이 한 존재에게 떠넘겨진 순간”입니다. 신의 탄생이라기보다, 짐을 짊어진 아이의 탄생에 훨씬 가깝습니다.
3. 슈퍼맨 클라크 켄트 – 인간 세계에서 길을 잃은 신
3-1. 캔자스에서 자라는 ‘지구인’ 소년
칼-엘은 지구에 도착해, 조나단 & 마사 켄트 부부에게 입양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으로 자라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소년 같지만, 실제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이상 징후”를 경험합니다.
교실에서 갑자기 모든 소리가 동시에 들리고, 벽 너머의 뼈와 장기가 투시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감각이 폭주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장면들. 이 장면들은 “능력이 너무 멋지다!”가 아니라, “감당하기엔 버거운 감각 과부하”로 연출됩니다.
클라크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우월감이 아니라 공포와 혼란입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어린아이에게 축복이 아니라 불안의 근원이 됩니다. “나만 이런 느낌이라면, 나는 도대체 뭐지?”라는 질문이 클라크의 유년기를 지배합니다.
3-2. 조나단의 딜레마 – “세상을 구하라고 말할 수가 없어”
클라크의 아버지 조나단 켄트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조나단은 알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기보다 두려움과 통제의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토네이도 장면은 이 딜레마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차 안에 갇힌 개를 구하러 나간 조나단. 클라크는 충분히 그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마지막 순간, 손짓으로 아들을 말립니다. “오지 마라.” 자신의 생명보다, 아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한 선택입니다.
이 장면 때문에 조나단 켄트는 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아들을 숨기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아버지”가 과연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에 사로잡힌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됩니다. 다만 클라크 입장에서 이 사건은 결정적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정체성의 가장 깊은 곳에 각인되어 버립니다.
3-3. 정체성의 공백 –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청년
성인이 된 클라크는 이름과 직업을 바꿔가며 세상을 떠돕니다. 어선, 정유소, 바, 군 기지. 어딜 가든 이름을 숨기고, 조용히 남을 돕다가 사라집니다. 그의 삶은 계속해서 “인간 사회에 잠깐 섞였다가 사라지는 유령”처럼 흘러갑니다.
이때 클라크가 겪는 것은 전형적인 “정체성 공백 상태”입니다.
- 크립톤인으로 살기에는, 그 문명이 이미 사라졌습니다.
- 지구인으로 살기에는, 그의 힘과 출생이 너무 다릅니다.
- 어느 쪽의 기준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애매한 존재로 남습니다.
맨 오브 스틸의 1막 전체는 사실상 “슈퍼히어로의 근사한 탄생”이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신적 존재의 방황기”에 더 가깝습니다. 이 방황의 시간들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모든 윤리적 선택의 기반을 이룹니다.
4. 크립톤의 귀환 – 같은 신, 다른 해석: 조드 vs 칼-엘
4-1. 조드의 등장 – 멸망의 죄책감을 ‘사명감’으로 바꾼 자
크립톤이 폭발하기 직전, 쿠데타를 일으킨 죄로 조드는 유폐된 채 우주로 추방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처벌 덕분에 그는 크립톤 멸망에서 살아남습니다. 행성이 사라진 뒤, 조드의 삶에는 단 하나의 목적만 남습니다.
“크립톤을 되살려야 한다.”
처음만 보면 이 사명감은 꽤 감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민족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종족을 보존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행성의 생명과 문명을 통째로 희생시켜도 된다”고 믿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조드에게 지구는 “우리 종족을 부활시키기 위해 개조해야 할 자원”에 불과합니다. 그는 기후를 바꾸고, 구조를 뜯어고치고, 필요하다면 수십억 명의 인간이 죽는 것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윤리 기준은 극도로 단순합니다. “크립톤의 생존을 돕느냐, 방해하느냐”.
4-2. “우리는 같은 종족이야” – 혈통의 호소 vs 선택의 윤리
조드는 칼-엘에게 여러 번 말합니다. “너와 나는 같은 크립톤인이다. 너는 지구인이 아니다.” 혈통과 종족, 유전자를 근거로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칼-엘이 느끼는 현실은 다릅니다.
- 그를 키워 준 사람은 캔자스의 지구인 부모이고,
- 그가 지켜 온 일상과 추억은 지구의 풍경 위에서 쌓였으며,
-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로이스, 마사, 지구의 시민들) 역시 모두 인간입니다.
육체와 유전자는 크립톤이지만, 그의 정서와 가치의 상당 부분은 지구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칼-엘은 거대한 딜레마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나를 낳은 종족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나를 키운 세계를 지켜야 하는가?”
조드는 혈통의 언어로 설득하고, 클라크는 점점 선택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해 나갑니다. 맨 오브 스틸이 흥미로운 이유는, 슈퍼맨의 영웅 서사를 “운명”이 아니라 “선택된 정체성”의 이야기로 다시 써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4-3. 크립톤을 되살린다는 것의 실제 의미
조드의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꿈꾸는 크립톤의 부활은 실은 “옛 체제의 반복”에 가깝습니다.
- 유전자 코드로 계급과 역할을 설계하고,
- 특정 기능에 맞춰 아이들을 ‘생산’하고,
- 개인의 자유보다 종족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사회.
조드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위대했던 문명의 귀환”이지만, 조-엘과 칼-엘의 입장에서 그것은 이미 멸망을 불러온 “실패한 시스템의 복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칼-엘의 선택은 단순히 “지구인 vs 크립톤인”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는 “과거의 실패한 유산 vs 새로운 가능성” 가운데 어떤 쪽을 미래에 남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5. 신과 인간의 딜레마 – 인간은 신을 어떻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5-1. 군대, 정부, 인간 사회의 반응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당연히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군대는 그를 감시하고, 정부는 통제하려 하며, 언론은 “위협인지, 기회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합니다.
그 유명한 교회 장면에서, 클라크는 신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구에 엄청난 위험이 닥쳤고, 나만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를 믿어 달라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신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먼저 당신이 사람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대화는 신과 인간의 딜레마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보통 우리는 “인간이 신을 믿을 수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에 가까운 존재가, 불완전한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를 되물어 줍니다.
5-2. 배트맨과의 대비를 예고하는 지점
이 영화만 놓고 보면, 클라크와 인간 사회의 관계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군대는 그를 끝까지 “잠재적 위협”으로 분류하고, 그가 감시 레이더를 가볍게 꺼버리는 장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 긴장 관계는 이후 배트맨 v 슈퍼맨으로 이어지며, “신에 가까운 존재의 힘을 인간 사회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라는 더 큰 물음으로 확장됩니다. 맨 오브 스틸은 그 서사의 첫 장을 여는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슈퍼맨은 아직 완성된 “모두가 사랑하는 미국의 상징 히어로”가 아닙니다. 여전히 의심받고, 끝없이 토론의 대상이 되는, “막 데뷔한 신적인 존재”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이 ‘Man of Steel’이라는 다소 차갑고 거리감 있는 제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6. 파괴의 윤리 ① – 메트로폴리스의 붕괴, 이 폭력은 정당한가
6-1. 통쾌한 액션인가, 재난 영화인가
맨 오브 스틸이 개봉했을 때 가장 큰 논쟁 중 하나는 “메트로폴리스 파괴의 스케일”이었습니다. 초반의 스몰빌 전투와 후반의 도시 전투에서 빌딩은 연쇄 붕괴하고, 거리는 문자 그대로 초토화됩니다.
관객 입장에서 이 장면들은 솔직히 압도적입니다. 카메라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거대한 건물들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듯한 타격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이 폭력, 이 파괴는 어디까지 용인 가능한가?”
우리는 히어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도시가 박살 나는 장면을 너무 익숙하게 소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그 스케일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그 결과, 관객은 처음으로 “이건 조금 과한 거 아닌가…”라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6-2. 슈퍼맨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가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이 있습니다.
- 슈퍼맨은 전투 장소를 인적 없는 곳으로 더 분명하게 유도할 수 있었을까?
- 조드와의 싸움을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 이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 방식의 전투가 정말로 불가피했는가?
맨 오브 스틸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 질문들에 대해 영화 안에서 명쾌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즉, 의도적으로 완벽한 영웅의 이미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 속 슈퍼맨은 “이 일을 수십 번 해 본 베테랑 히어로”가 아닙니다. “처음으로 자기 힘을 전면적으로 사용해 본 젊은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의 선택은 미숙하고, 전쟁 경험도 없고, 집단 피해를 계산하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메트로폴리스 전투는 “완벽하게 옳은 싸움”이라기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큼의 피해도 함께 떠안게 된 싸움”처럼 느껴집니다. 이 불완전함이 이후 DC 유니버스 전체 갈등의 씨앗으로 남습니다.
7. 파괴의 윤리 ② – 목조르기 장면: 신이 살인을 해도 되는가
7-1. 논쟁의 중심, 그 한 컷
맨 오브 스틸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은 역시 마지막 조드의 목을 꺾는 장면입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 조드는 이미 크립톤의 부활이 좌절된 상황에서,
- 지구인에 대한 증오만 남은 채,
- 일부러 시선을 고정한 채 레이저를 인간 가족을 향해 들이밉니다.
클라크는 필사적으로 그를 제지하지만, 조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네가 나를 죽이지 않는 한.”
이 한마디는 곧 윤리의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좁혀 버립니다.
- 조드를 살려두고, 그가 계속 인간을 죽이도록 두거나,
- 혹은 그를 죽임으로써, 더 이상의 살인을 막거나.
클라크는 오랜 시간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선택 ―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립니다.
7-2. 왜 굳이 이런 엔딩을 택했는가
전통적인 슈퍼맨 이미지는 “절대 살인하지 않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히어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많은 팬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슈퍼맨이 사람을 죽이다니?”라는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오히려 이 장면을 “슈퍼맨이 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합니다.
즉, 이미 완성형 슈퍼맨이 갑자기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이 끔찍한 경험 이후에야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윤리가 형성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절대선의 기준”이 실수와 고통의 경험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관점입니다.
신에 가까운 존재도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힘을 가진 존재 역시 선악의 갈림길 앞에서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때로는 후회할 선택을 합니다. 맨 오브 스틸은 이 불편한 지점을 끝까지 비추는 쪽을 택합니다.
7-3. 살인 이후의 비명 – 신도 죄책감을 느낀다
조드가 죽은 직후, 클라크는 쓰러지며 통곡에 가까운 비명을 지릅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의 살인이 “쿨한 정의 구현”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죄책감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비명은 이렇게 들리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여기까지 와 버렸구나.”
신과 인간의 딜레마를 이 장면만큼 선명하게 응축한 컷도 드뭅니다. 지구인들이 보기에는 그는 여전히 “엄청난 힘을 가진 외계인”이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내가 이런 선택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8. 정체성의 완성 – “슈퍼맨”이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순간
8-1. S의 의미 – 슈퍼맨이 아니라 ‘희망’
영화 속에서 칼-엘은 가슴의 S 마크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우리 종족의 상징이에요. 우리 말로 ‘희망’을 뜻하죠.”
지구인들에게는 그냥 S로 보이지만, 그에게 이 마크는 “자유의지를 가진 새로운 크립톤”에 대한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과거처럼 계급과 운명이 설계된 세계가 아니라,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세계를 향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슈퍼맨이라는 이름은 “능력이 슈퍼라서 붙은 이름”이라기보다, 그 마크를 본 인간들이 마음대로 붙인 별칭에 가깝습니다. 정작 그의 진짜 상징은 S 글자 자체가 아니라, 그 S 위에 어떤 삶을 쌓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있습니다.
8-2. 데일리 플래닛 – 인간 속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탄생
영화의 마지막, 클라크는 안경을 쓰고 데일리 플래닛에 기자로 취직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팬서비스를 넘어, 초능력자가 “진짜로 인간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는 선언처럼 보입니다.
히어로로만 존재하는 것보다, 일상 속의 ‘보통 사람’ 클라크 켄트로 살아가는 것. 그는 이제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 밤에는 지구를 구하는 신적인 존재,
- 낮에는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며 취재를 다니는 기자.
맨 오브 스틸은 이 지점에서 “정체성의 분열”이 아니라 “정체성의 공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크립톤인의 유산과 지구인의 삶, 신적인 힘과 인간적인 일상,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둘 다 안고 가는 선택을 택한 셈입니다.
9. 신과 인간의 딜레마,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질문
9-1. 신적인 존재에게도 ‘경험’이 필요하다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을 완성형 상징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수하고, 방황하고, 후회하고, 그 뒤에 기준을 세우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이 관점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비유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신이 위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판단하는 구조가 아니라,
- 우리와 비슷하게 고민하고 흔들리면서도, 더 큰 힘을 가진 만큼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서의 신.
그래서 이 영화의 슈퍼맨은 신이라기보다 “신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에 있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슬픔, 후회와 다짐들이 이 캐릭터를 단순한 이상형이 아니라, “논쟁 가능한 윤리적 주체”로 만들어 줍니다.
9-2. 인간은 신을 원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하는가
또 한편으로, 맨 오브 스틸의 지구 인류는 “신 같은 히어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던집니다.
-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 동시에 그가 너무 강해지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동시에, 언젠가 통제 불능이 될까 봐 걱정합니다.
이 모순된 감정은 현대 사회의 지도자, 기술, 권력, 시스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강력한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삶이 편해지기를 바라면서, 그 시스템이 우리를 지배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맨 오브 스틸의 클라크는, 이 시대의 이러한 딜레마를 한 몸에 안고 서 있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나를 믿어라”라고 말해야 하는 동시에, “내가 오히려 당신들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함께 짊어집니다.
9-3. ‘파괴의 윤리’를 피해서는 아무것도 논의할 수 없다
이 영화가 끝까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파괴와 죽음을 단순히 “악당이 나빠서 그렇다”는 말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드의 광기는 크립톤 멸망에 대한 죄책감과 집착에서 비롯되었고, 클라크의 살인은 절망적인 선택지 안에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즉, 영화는 정면으로 “파괴의 윤리”라는 주제를 들고 나옵니다.
- 언제 파괴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 한 존재의 생명을 끊는 선택을, 누가 감히 내려도 되는가?
- 더 큰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판단은 정당한가?
맨 오브 스틸은 이 질문들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한 장면씩 쌓아 올려 관객이 스스로 고민하도록 만듭니다. “나였다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한번 마음에 꽂히고 나면, 이 영화는 단순한 히어로 블록버스터를 넘어 “신과 인간의 윤리 수업”처럼 다가옵니다.
9-4. 결국, 맨 오브 스틸 영화 슈퍼맨은 이런 이야기를 건네는지도 모른다
맨 오브 스틸(2013) 신과 인간의 딜레마, 탄생·정체성·파괴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떠올려 보면, 이 영화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신은 없습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도, 탄생과 정체성과 파괴의 무게 앞에서 우리처럼 흔들리고, 실패하고, 후회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다짐 위에 쌓아 나가는 새로운 선택들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합니다.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은 바로 그 이름이 붙기 직전까지의 길고 험한 과정을 보여주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슈퍼맨의 이야기입니다.
맨 오브 스틸 영화 슈퍼맨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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