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2003)는 684부대에 대한 실화를 다룬 영화입니다. 살인 병기로 키워진 인간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실미도의 리뷰 결말 해석을 다룹니다.

감독 강우석
주연 설경구(강인찬), 안성기(조 중령), 허준호(한 상사), 정재영(상필), 임원희(원희), 강신일(근재) 외
장르 역사 · 액션 · 드라마 / 러닝타임 135분 / 배경 1968~1971년 대한민국, 인천 실미도·서울
본 리뷰는 영화의 주요 전개와 결말을 포함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 감상 후 읽으셔도 좋아요.
왜 지금 다시 <실미도>인가
<실미도>는 한국 관객의 집단 기억을 흔든 작품입니다. 단순히 ‘실화 바탕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냉전의 공기와 정치의 균열 속에서 국가와 개인의 약속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정면으로 묻습니다. 684부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부대’라는 행정 언어가 실제로는 ‘지워지는 사람들’의 고통으로 번역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미도 주요 인물(영화 기준)
강인찬 — 설경구
사형수 신분으로 실미도에 끌려와 혹독한 훈련을 버팁니다. “임무 완수 시 자유”라는 약속 하나에 매달려 하루를 견디는 인물. 분노와 체념으로 시작하지만 동료들과 ‘살아서 돌아갈 이유’를 찾아가며 변화합니다.
조 중령 — 안성기
명령과 효율을 최우선하는 군인. 하지만 국가의 판단이 흔들리는 순간,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화가 품은 윤리적 질문을 관객에게 건네는 통로 같은 존재죠.
한 상사 — 허준호
지옥 훈련의 집행자. 거칠고 무자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균열이 보이는 인물. ‘폭력의 기계’로 살았던 사람이 흔들릴 때 생기는 서늘함을 정확하게 구현합니다.
상필·원희·근재 등 31인의 얼굴
서로 다른 상처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부대로 묶입니다. 욕망과 농담, 다툼과 화해가 뒤섞이며 ‘국가가 만든 형제애’라는 양가성을 증명합니다.
실미도 도입 — 시대의 공기, 그리고 ‘작전’이라는 말의 무게
1968년, 한반도는 냉전의 바람 속에 있었습니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분위기는 단단히 얼어붙고, 보복과 억제의 논리가 앞세워집니다. 그 중심에서 684부대가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실미도가 훈련장이 됩니다. 실미도라는 공간은 영화의 정서를 결정짓는 무대예요. 뭍과 단절된 섬, 도망칠 데 없는 지형, 거친 바람과 파도. ‘임무를 위해 인간을 기계로 깎아내는’ 환경으로서 완벽합니다.
실미도 줄거리 —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긴 시나리오처럼
1막: 끌려온 사람들, 버려진 섬
사형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어둠 속으로 호송됩니다. 형장이라 여겼던 길 끝에는 항구가 있고, 그들을 싣고 떠난 배가 멈춘 곳은 인천의 무인도 실미도. 상륙과 동시에 지옥이 열립니다. 바다, 모래, 곤봉, 침묵. 한 상사는 선언합니다. “여기선 인간이 아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도구다.” 첫날부터 탈진자가 속출하고, 공포와 분노가 뒤엉킵니다.
강인찬은 이를 악물고 버팁니다. 귀에 붙여 넣은 한 문장 때문이죠. “임무를 완수하면 자유를 주겠다.” 구원처럼 들리던 약속은 사실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취제였습니다. 조 중령은 상부의 압력을 전하며 훈련 강도를 올립니다. ‘왜’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구령이 섬을 뒤덮습니다.
2막: 임무를 향해, 인간을 벗겨내는 훈련
사격·잠입·폭파·근접전·침투·은폐. 몸의 언어를 바꾸는 시간이 흐릅니다. 상필은 반사신경으로 표적을 먼저 쓰러뜨리는 법을 배우고, 원희는 손이 빨라 폭발물 장전에 강점을 보입니다. 과묵한 근재는 밤마다 짧은 기록을 남깁니다. ‘우리는 31명. 오늘 30명, 내일 29명…’ 숫자가 줄 때마다 종이는 더 젖어갑니다.
폭우가 내리던 밤, 처음으로 실탄이 지급됩니다. 섬 반대편의 가상 적 진지를 치고 돌아오는 야간 작전. 바위 틈을 기다시피 지나고, 파도가 무릎을 낚아채고, 철조망이 살을 긁습니다. 복귀 후 조 중령은 짧게 말합니다. “사람이 되어가는군.” 그 말은 농담처럼 잔인합니다. 훈련이 이어질수록, ‘사람’이라는 말은 점점 더 멀어지니까요.
그러나 섬에도 작은 온기가 스며듭니다. 탈진한 동료를 끌어올리던 밤, 인찬이 처음 웃습니다. “우린 죽어서도 같이 가.” 누군가 받아칩니다. “그럼 장례식비는 누가 내냐.” 다음 날, 해안 PT를 앞장서 주도하던 가혹한 교관 한 명이 바닷가 경사면에서 ‘우연히’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힌 채 발견됩니다. 공식 기록은 ‘사고’지만, 밤마다 귓속말로 오가던 분노와 한숨을 떠올리면 그 ‘우연’이 과연 우연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실미도는 비밀을 삼키는 섬 입니다.
사건 직후 섬의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조 중령은 즉시 보고 체계를 가동하고 외부 반출을 최소화한 채 시신을 처리합니다. 그는 모두를 모아 “훈련 중 안전 수칙을 재점검한다”는 말만 짧게 남깁니다. 한 상사는 표정을 읽기 힘들 정도로 차갑게 부대원들의 동선을 재배치하고, 야간 통제선과 무기고 출입 절차를 강화합니다. 겉으론 사고 수습이지만, 속내는 분명합니다. ‘여기서는 침묵이 규칙’이라는 무언의 경고.
부대원들 사이엔 이상한 결속과 더 깊은 균열이 동시에 생깁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해냈다”는 얄팍한 자존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선을 넘었다’는 불길함에 시달립니다. 인찬은 그 어느 때보다 말을 아끼고, 상필은 밤마다 모래 위에 무의식적으로 발자국을 지웁니다. 그들은 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죠.
그날 이후 훈련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집니다. 구령은 더 짧아지고, 점호 때 눈빛은 더 길어집니다. 누가 ‘그 일’에 관여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지만, 모두가 압니다. 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걸 기억한다는 것을. 이 기억은 훗날 ‘작전 취소’라는 한 마디가 떨어졌을 때, 탈출이라는 선택으로 수렴하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됩니다. ‘여기선 인간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들으며 버텼던 시간들이, 이제 ‘우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결의로 뒤집히는 순간이니까요.
3막: 정치의 바람, 그리고 ‘작전 취소’
시간이 흘러 공기가 달라집니다. 외교적 부담, 물밑 접촉, 정치적 이해관계. 상부에선 ‘취소’라는 단어가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현장에는 그 단어를 전할 문장이 없습니다. 조 중령은 침묵합니다. 한 상사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집니다. 보급은 끊기고, 훈련은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부대원들은 기분 나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날 이후 섬의 공기는 변합니다. 눈빛이 암호가 되고, 침묵이 계획이 됩니다. “살아남으려면 섬을 나가야 한다.”
4막: 탈출, 서울로 — 그리고 비극적 종결
무기고의 자물쇠가 ‘딱’ 하고 풀리는 순간, 모든 얼굴이 동시에 굳습니다. 상필이 먼저 숨을 참아 문을 밀고, 인찬이 뒤에서 짧게 손짓합니다. 말 대신 눈으로 숫자를 셋까지 세고, 그다음은 일사불란한 몸의 언어뿐. 총, 탄창, 탄띠. 누구도 크게 숨 쉬지 않습니다. 바람이 모래를 스치며 내는 소리까지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해안 경사면을 내려설 땐 모래가 신발 안으로 사각사각 파고들고, 뒤에서 한 상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뒤를 보지 마.” 그 말은 도망의 주문 같고, 혹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맹세처럼 들립니다. 배를 빼앗는 동작은 짧고 조용합니다. 배가 물보라를 일으킬 때, 인찬은 한 번도 보지 않던 표정으로 섬을 돌아봅니다. 저곳에서 우린 만들어졌고, 저곳에서 우린 지워졌다.
도시는 아직 아침을 맞을 준비 중입니다. 빵집 문이 반쯤 열리고, 첫 버스가 차고를 나옵니다. *버스를 세우는 장면은 폭력적이지만 번개처럼 빠릅니다. 운전사가 놀라 손에서 떨어뜨린 동전이 바닥을 굴러가고, 몇 좌석 뒤에서 아이 울음이 터집니다. 상필이 급히 “괜찮아, 조용히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버스 승객들에게 던진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사죄에 가깝습니다.
차창 밖으로 평범한 얼굴들이 흘러갑니다.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자전거에 매달린 우유통, 출근길 넥타이. 그들은 모릅니다. ‘저들이 누구인지, 왜 이곳까지 왔는지.’ 하지만 도시의 공기는 빠르게 바뀝니다. 경광등의 번쩍임이 차창 안쪽을 파랗게 물들이고, 무전기의 전파음이 가까워집니다. 정류장 하나, 두 개를 지나며 도로는 봉쇄되고 총구가 버스를 겨눕니다.
부대원들은 창틀에 손을 괴고 바깥을 바라보는 자세만으로 대답합니다. 인찬의 시선은 정면을, 상필은 좌측 사각을, 원희는 바닥의 아이를. 누군가 “끝까지 가는 거야?”라 속삭이면, 다른 누군가 “우릴 만든 쪽이 답하면 멈춰”라 되받습니다. 그 말들에는 분노보다 피곤이 묻어 있습니다. 약속이 파기된 자들의 피곤.
그때 조 중령이 나타납니다. 유리 너머에서 그의 얼굴은 특유의 평정으로 굳어 있지만, 눈동자는 분명히 흔들립니다. 메가폰을 든 경찰관이 물러나자, 조 중령은 소리칩니다. “강 인찬! 문 열고 내 말 들어!” 잠깐의 정적. 인찬은 버스 맨 앞 봉을 잡고 몸을 기댄 채, 창밖의 조 중령을 오래 응시합니다. 눈빛엔 두 겹의 감정이 겹칩니다. 훈련장의 명령을 들었던 시간들, 그리고 약속이 사라진 뒤의 시간들.
조 중령은 ‘명령’으로 시작했다가 ‘사람’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내려.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책임지겠다.” 그 마지막 한 문장에 미세한 떨림이 스칩니다. 한 상사의 고개가 아주 느리게 옆으로 움직입니다. 그 떨림을 믿고 싶은 마음과 믿지 못하는 기억이 버스 안을 가릅니다.
저격수의 붉은 점이 유리창에 가늘게 흔들리고, 아이 울음이 다시 짧게 터집니다. 원희가 아이에게 미소를 흘립니다. “조금만, 금방 끝나요.” 아이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순간 버스 안의 ‘우리’에는 인질도 포함됩니다. 부대원들 누구도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결정의 순간은 대사보다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인찬이 뒤쪽을 훑습니다. 상필의 주먹, 근재의 굳은 입술, 원희의 어설픈 웃음. 인찬은 조용히 말합니다. “우릴 만든 곳이 우리를 지운대.” 짧은 숨. “그럼 마지막은 우리가 정하지.” 이 말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존엄의 방향**을 고르겠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버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이 다시 굴러갑니다. 외부의 엄폐 소대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긴 듯한 딱딱한 금속음이 공기를 가릅니다. 그 작은 소리가 커다란 굉음의 전주가 됩니다.
폭발. 충격파가 유리를 산산이 깨고, 흰 연기와 검은 잔해가 섞여 회색의 장막을 만듭니다. 슬로 모션처럼 흩어지는 파편들 사이로 배우들의 얼굴이 한 컷씩 남습니다. 상필은 끝까지 고개를 들고 앞을 봅니다. 원희는 마지막까지 아이가 몸을 숙였는지 확인하려고 시선을 낮춥니다. 근재는 눈을 감기 전, 어딘가에 적어 두었던 31이라는 숫자를 떠올리는 듯합니다.
조 중령은 연기 속에서 비틀거리며 버스로 손을 뻗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공중을 쓸 뿐, 아무 데도 닿지 않습니다. 메가폰이 바닥을 구르며 나는 플라스틱 마찰음이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장면은 소리를 줄이고, 호흡만 남깁니다.
카메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길게 붙잡습니다. 살아남은 자와 쓰러진 자의 경계가 흐릿해진 그곳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건 ‘폭발’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왜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입니다. 국가는 ‘정리’라는 단어로 상황을 닫으려 하지만, 이름을 가진 얼굴들은 스크린을 떠나지 않습니다. 엔딩의 침묵은 애도라기보다 질문에 가깝습니다.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책임은 누가 지는가. 기록은 누구의 언어로 남는가.
현실과 영화 사이
확정적 사실에 가까운 것
무장공비 침투 사건 직후 대북 보복 임무로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창설되었고,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는 이 골격 위에 개인 서사를 얹어 몰입을 키웁니다.
영화적 각색과 논쟁
특히 ‘구성원의 출신이 전원 사형수였는가’ 같은 문제는 여전히 논쟁이 있습니다. 작품은 드라마적 설득력을 위해 사연들을 굵직하게 압축하고, 시대의 차별과 연좌제를 장치로 적극 활용합니다. 핵심은 단정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도구’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작전이 사라진 뒤 그 도구들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뒤늦은 기록
사건의 일부는 뒤늦게 조사·보도로 이어졌고,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금도 조심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미덕은 ‘완결된 진실’이 아니라 ‘멈춰 있던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연출·연기·음악 — 왜 여전히 강력한가
연출
훈련 몽타주, 야간 침투, 도심 대치까지 리듬을 분할해 몰입을 유지합니다. 블록버스터의 외형으로 역사적 비극을 압축하는 방식이 선명해요. 군중극을 ‘국가 장치’라는 프레임 안에 묶어 놓고 압박을 키우는 선택도 탁월합니다.
연기
설경구는 분노와 체념의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사람→도구→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궤적을 설득합니다. 안성기는 권위와 동요가 공존하는 무게 중심을 제공하고, 허준호는 말수 적은 잔혹성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조연 라인은 캐릭터의 밸브를 정확히 조절해 군상극에 살을 붙입니다.
음악·사운드
장엄과 비애를 오가는 테마가 공간감을 확장합니다. 북과 금관이 밀어붙이는 행진 리듬은 ‘작전’의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현악이 깔리는 고요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품습니다. 파도·바람·군홧발·포성이 층층이 쌓여 실미도의 거친 지형을 귀로 체감하게 하죠.
의미 읽기 — 국가와 개인, 약속과 책임
1) ‘존재하지 않는 부대’의 역설
행정 언어의 한 줄이 사람의 생과 사를 바꿉니다. 작전 취소 뒤 남는 것은 ‘약속의 공백’입니다. 국가는 임무를 위해 자유를 약속했고, 개인은 자신의 삶을 저당잡혔습니다. 그 약속이 파기된 순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영화는 대답 대신 버스를 클로즈업합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형태의 존엄, 혹은 절망.
2) 폭력과 형제애의 양가성
훈련의 카타르시스는 몰입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불편함을 남깁니다. 영화는 이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국가 장치가 만들어낸 의리와 충성의 감정은 진짜였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보호받지 못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은 엔딩의 잿빛으로 묻습니다.
3) 집단 기억의 문턱
<실미도>가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는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래 미뤄 둔 질문을 집단적으로 마주하고 싶었던 시대의 욕망이었죠. 그래서 이 영화는 기록과 흥행의 숫자를 넘어 여전히 현재형의 무게를 가집니다.
좋았던 점 / 아쉬웠던 점
좋았던 점
① 31인의 얼굴로 지어 올린 군상극의 밀도
② 훈련·침투·대치로 이어지는 리듬의 설계
③ 설경구·안성기·허준호의 에너지가 끌고 가는 정서선
④ 무엇보다 명료한 질문: “국가는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는가”
아쉬웠던 점
① 일부 캐릭터 서사가 장르적 압축 속에 단선적으로 소비되는 순간
② 폭력의 재현이 관객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의도와 다르게 ‘낭만화’로 읽힐 위험
③ 사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가 좀 더 분명히 표식되었으면 하는 아쉬움
작은 TMI — ‘섬’이 만든 정서
실미도는 인천 영종도 남서쪽의 작은 무인도입니다. 낮은 구릉과 거센 바람, 파도가 만든 지형은 탈출이 어려운 ‘자연 감옥’ 같은 인상을 줍니다. 영화가 이곳을 거대한 훈련장이자 심리적 감옥으로 그린 건 매우 설득력이 있어요.
실미도 지금,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국내 스트리밍 편성은 수시로 변동됩니다. 넷플릭스·왓챠·웨이브·티빙 등 주요 플랫폼과 디지털 대여/구매 서비스를 검색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제공 여부가 자주 바뀌니 시청 직전에 다시 확인해 주세요.
한 줄 평 & 추천 대상
한 줄 평: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가 개인의 이름을 지워갈 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이런 분께 추천: 한국 현대사의 결을 따라가는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 실화 기반 군상극의 에너지를 체감하고 싶은 분,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에 오래 머물고 싶은 분.
감상평 — 684부대가 남긴 질문, 오늘의 우리에게
제가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버스 안’의 정적입니다. 누구는 생존, 누구는 명예,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릅니다. 국가는 작전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건 약속까지 바꿀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영화는 그 약속이 파기되는 순간을 눈앞에 보여주고, 관객인 우리가 그 책임을 어떻게 나눠 가져야 하는지 묻습니다.
좋은 영화는 사실을 몰아붙이기보다 진실을 불러냅니다. <실미도>는 ‘그날들’의 공기와 폭력, 약속과 배신의 감정을 호명하며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웁니다. 극장 불이 켜진 뒤에도 한참을 앉아 있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엔딩 크레딧이 다 흐르고도 마음속에 남는 것은 거대한 작전명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얼굴과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실미도>는 기록의 숫자보다 질문의 무게로 기억되어야 할 작품입니다. 실패한 작전의 기록이 아니라, 잊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안부를 묻게 됩니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고 싶은 동물이라서요. 그 마음이 바로 이 작품의 진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실미도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위키백과
